꿈
몇일전 꿈을 꾸웠다.
꿈에서 나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과 왜 죽어라 공부만 하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꼭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근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학부모들이 나타났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학부모들은 나에게 욕을 하며 “네가 내 자식을 망칠려고 그러냐!” 라며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얻어 맞았다. 그러면서 난 꿈에서 깨어났다.
…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꿈이었구나… 휴~
하지만 이내 그것이 현실이며, 내가 사회에서 받는 압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옥죄이는가? 대학을 가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수많은 감성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청소년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이라는 감옥에 가둬두고 그들을 채직질 한다. 남들 보다 앞에 서라고, 같은 방식, 같은 형태로만 앞에 서는 것이 인정된다. 다른 방식으로 옆에 서면 이단자이며 낙오자이다. 숨이 막힌다.
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가정이여야 하는데, 부모들 보면 분노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리곤 돌아서 인터넷, 게임에 열중한다. 아주 작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나를 “나, 개인”으로 바라본다. 어딘가에 줄서있는 그런 하나의 점이 아니라, 개인으로 바라봐 준다. 이렇게나마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유독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런 부모들은 “내가 이렇게 살아서 이정도밖에 안됐다. 그러니 너희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악착같이 공부만 해서 저 성공한 사람들처럼 되어야한다.” 라며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온 길을 스스로 부정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당당해야한다. 자신들의 삶에 좀 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사회가 이들을 못 산다고,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힘들수있다. 누구나 힘들다. 많이 있으면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없으면 없는 가운데 또다른 고충이 있다. 없어서 힘들고 많이 가져서 행복한게 아니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되는 것이 아니라, 반기를 들고 일어서야한다. 그러면 사회 분위기도 바뀔 것이다. 가정도 아이들도 바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